물류센터의 안전관리에 대한 단상

작성자 : 양거봉 이지로지스 2025.12.31 게시

끊임없는 안전사고, 이대로 괜찮을까

그림1. 끊임없는 안전사고, 이대로 괜찮을까

AI 생성

이번 정부의 화두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안전'일 것이다. 특히 최근들어 선진국 대비 높은 사고율과 이러한 사고가 개선되지 않는 원인을 원가절감에 따른 안전 불감증과 생명경시 풍조로 규정하며, 현장에서의 인명사고 발생 시 강력한 징벌적 배상과 사업 규제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으며, 실제 몇몇 기업들은 이미 이에 대한 패널티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에도 과연 현실은 변했는가 생각해본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화재, 대형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지게차 충돌 등 물류 현장에서는 크고작은 인명 사고가 거의 매년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들이 발생하면 언론에 보도되고, 이에 대한 원인과 개선방안을 분석하는 후속 기사들이 연이어 발행되곤 하지만 물류현장에서의 사고는 다른 산업현장에서의 사고와 달리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의 온도는 결국 며칠 뒤 다시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원인이 된다. 어쩌면 당장의 일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 건설업이나 다른 산업과 달리, 택배터미널이나 대형 물류센터에서의 영업중단은 매우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산업계 전반에 큰 문제로 이어지기에 현실적으로 건설과 물류를 동일하게 규제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떤 현장에서든 인명의 가치와 사고 예방의 중요성이 다르지 않다면, 개선에 대한 의지와 관리의 필요성 또한 반드시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현장에서 운영 업무를 수행 중이거나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고는 우연히 발생하는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누적돼 온 구조적 문제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사고에 대한 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여러 환경적 요인과 인력과 장비가 수 없이 오가는 물류현장의 특성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생산성과 비용이 우선시되는 물류 산업의 구조와 이를 바꿔나가야 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소방점검을 통해 돌아본 안전 인식

얼마 전 물류센터를 대상으로 진행된 소방 및 안전 점검을 받았다. 나름 비용절감보다는 안전을 중심으로 현장을 운영하고 있고, 여러모로 안전사고 방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안전관리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개선 필요사항이 나왔다. 

하나의 사례로 방화문에 설치해 두었던 스토퍼에 대한 지적 사항이 있었다. 사실 작업 동선과 환기, 장비 이동의 편의를 위해 문을 열어두는 것은 현장에서 매우 흔한 행위이다. 문을 닫아두면 화물과 인력의 움직임이 불편하기에, 스토퍼를 통해 문을 상시 개방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전 규정대로 이를 본다면 이는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화재 발생 시 해당 문이 닫혀있지 않다면 열린 문을 통해 유독가스와 화재 확산이 진행되고, 이는 대피할 수 있는 공간과 내부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에 큰 영향을 주며, 결국 생존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문을 여닫는 작은 차이가 원칙적으로는 인명 피해의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함께 현장점검을 진행한 담당자 또한 이런 사례가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적발되는 위험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장 관리자들에게 전파하고 개선에 대한 요청을 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사실 현장의 안전은 관리자인 필자보다 그들에게 더 중요함에도 그들은 이러한 문제를 자신들의 안전과 연결된 것으로 인식하기보다 규정을 준수할 때의 불편함에 대한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관리자의 지식 부족과 현장에서의 편의 중심이라는 상황이 안전에 대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류센터 안전불감증의 원인과 개선방향

한국의 이커머스 물류센터는 속도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고객사는 더 낮은 단가와 더 빠른 대응을 요구하고, 물류사는 고객사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출고율과 리드타임, 생산성 지표를 최우선으로 관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과 강조는 수없이 하지만, 실제 현장 운영 과정에서 이는 의사결정의 우선순위에서는 늘 가장 후순위로 밀린다.

만약 물량이 갑자기 증가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동선을 줄이기 위해 상품을 집중 적치하며 통로의 폭은 좁아지고, 작업공간 외 구역에 임시 적치가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비상구 인근이나 소화전 앞까지 적치 공간으로 활용된다. 결국 처리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고 위험도 같이 증가함에도 출고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면 이런 위험들은 그냥 넘어가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구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일까. 그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물류 현장의 하도급 운영 구조다. 물류사는 자기들이 받은 조건보다 더 빡빡한 SLA를 협력사에 요구하고, 협력사는 박한 단가에 맞춰 사람과 시간을 쥐어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책임은 계약서 어디에도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이러한 사유로 교육은 형식만 갖추는 수준이고, 위험한 부분을 발견해도 물량이 밀렸다거나 일일이 조치하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미뤄진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부터 따지느라 정작 시스템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책임질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구조에서 근본적인 개선이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렵다. 강력한 내부 규제로 이걸 잡아보려는 시도도 있지만 점검 기간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물량이 증가하는 시기만 되면 어김없이 임시 적치가 시작되고, 공들여 세워놓은 안전기준은 기준은 금새 무너진다. 다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오늘만 하고 정리하자"는 말이 매번 반복된다. 그런데 그 '오늘'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 이어지는 게 문제다. 과적재 때문에 무너질 위험, 전기난로 옆에 쌓인 박스들, 막혀버린 통로와 비상구까지. 평소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치명적이다.

결국 물류센터 안전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산성이 전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운영 담당자는 SLA 때문에 출고를 멈출 수 없고, 협력사는 단가 때문에 사람을 더 쓸 수 없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안전은 그저 비용으로밖에 안 보인다. 항상 안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제일 먼저 포기되는것이 바로 안전이다.

그런데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상품의 배치, 정확한 적치 기준, 확보된 동선, 주기적인 점검과 교육 등 안전한 센터가 결국 잘 운영되는 센터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안전을 위한 활동이면서 동시에 운영 품질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안전과 생산성은 서로 맞서는 개념이 아니라, 안전이 바로 지속가능한 생산성의 전제조건이다.

문 스토퍼 하나를 예시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이 작은 스토퍼 하나가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안전을 몰라서가 아니라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고는 누군가의 실수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프로세스와 인식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을 바꾸지 못하면 사고는 반복된다. 속도만 쫓다가 멈추지 못하는 물류센터는 결국 사고로 인해 강제로 멈추게 된다. 

반대로 안전을 위해 잠깐 속도를 늦출 줄 아는 센터는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요즘 물류센터 경쟁력이 속도보다는 품질과 지속가능성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운영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게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사업이 오래 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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