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와 이커머스 물류의 역설
작성자 : 양거봉 이지로지스 2026.01.31 게시규모의 경제는 절대적인가?
그림1. 규모의 경제와 이커머스 물류의 역설
AI 생성
물류에서 가장 보편적이자 강력한 이론을 하나 꼽아본다면 '규모의 경제'일 것이다. 우리가 물류의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최종적인 목적을 떠올려 본다면 대부분은 비용의 효율성 향상, 혹은 일 처리량의 증가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을 분석해본다면 입지와 레이아웃, 설비 등 인프라적인 요소와 더불어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들을 어떤 기준으로 봐야 할 것인가 생각해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요인들은 결국 규모의 경제에 따른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만큼 대부분이 아는 이론일 것이다. 처리하는 물량의 규모가 커질수록 단위당 처리 비용과 고정비의 비중은 감소한다는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이 이론의 구조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집약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작업은 배치를 점차 규칙적으로 만들며, 공정을 세분화하여 작업자들이 다루는 도구 혹은 행위를 단순화한다. 이러한 규칙적인 공정과 동일작업의 반복을 통해 근로자들은 작업에 대한 빠른 학습이 가능해지며, 이를 기반으로 생산성 개선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규모가 커질수록 원자재의 입고부터, 작업 라인의 이동, 완제품의 이동 단위는 커지고, 단위당 이동 효율은 크게 증가한다. 이를 통해 큰 폭의 낭비요인 개선과 효율 증대를 만드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사실 이를 배우지 않더라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은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져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런 이유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물류 기획의 정석은 ‘규모의 경제를 어떻게 만들것인가’에서 시작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B2C 중심의 이커머스 물류가 성장함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가지고 있었던 절대성과 영향력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가령 운영의 규모나 주문 구성의 복잡성이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규모의 경제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프로모션에서 물류의 대응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이 시기에 문제가 집중되는것을 운영 관점에서든 소비자로서의 관점에서든 한번쯤은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운영 인력의 미숙함이나 관리 역량의 한계로 치부하거나 물류센터의 처리용량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는 개별 센터의 역량이나 용량의 문제보다 관리적 측면에서의 기본 조건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시점, 그리고 문제의 발생 과정을 분석해볼 때 공통적으로 발견한 사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반드시 표준화의 문제가 함께 발생했다는 것이다. 즉, 규모의 경제 실패와 표준화의 문제는 언뜻 다른 이슈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상 별개의 이슈가 아닌, 하나의 구조적 결함에서 발생하는 결과라는 점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규모의 경제와 표준화는 ‘동질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 규모의 경제는 표준화의 과정을 만든다. 즉, 규모의 경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취급하는 대상이 일정하고, 작업 프로세스가 단순 반복이 가능하며, 외부 변동성이 통제 범위 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을 가진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전제가 유지될 때 작업의 편차가 감소하며 학습 효과를 키워나가며, 규모의 확대가 비용 효율로 전환되는 것이다. 즉, 규모의 경제란 단순한 양적 팽창이 아니다. 표준화된 프로세스가 반복되면서 학습 효과와 효율 개선이 누적될 때 비로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이커머스 물류는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이러한 전제 조건들을 하나씩 줄여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더 이상 단일한 기능만을 수행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초기에는 단순히 소비자에게 물건을 보내는 출고 중심의 공간이었으며 이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왔지만, 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B2B 납품, 까다로운 임가공, 반품 처리, 재포장 및 세트 구성, 해외 출고 등 성격이 판이한 기능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전체 물동량은 성장하였음에도 작업과 관리의 속성이 다변화되며 단일 운영 체계가 아닌 그저 한 곳에서 복합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임가공이나 반품 같은 이질적 작업뿐 아니라, 출고라는 단일 카테고리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분화된 옵션 구성'이다. 최근 이커머스 시장에서 유행하는 ‘세분화된 옵션 구성’을 필자가 근무하는 물류센터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필자가 근무하는 물류센터의 화주는 랜덤 골라담기 구조로 상품을 판매한다.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자신의 입맛대로 상품을 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겠지만, 이를 처리해야 하는 물류 현장은 가장 어려운 조건을 받아들이게 된다. 200여 개의 SKU가 단일 주문 안에서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로 조합될 때, 기존의 표준화된 피킹 경로와 패킹 가이드는 더 이상 효율을 낼 수 없게된다. 작업자는 200개의 상품을 인식하고 포장때마다 개품을 확인해야 하고, 포장 단계에서는 매번 달라지는 체적에 맞춰 박스 크기를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량이 10배 늘어난다고 해서 200종의 상품을 조합하는 속도가 10배 빨라질 확률은 매우 낮다. 오히려 물량이 늘어날수록 적치 공간의 밀도는 높아지고, 작업 동선은 점점 복잡해지며, 오피킹에 대한 리스크는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다. 결국 이 시점에서 규모의 경제는 작동을 멈춘다. 단위당 비용 절감이라는 이익 대신,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한 숙련 인력의 집중 투입과 오배송 사후 처리에 드는 막대한 비용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추진되는 표준화는 필연적으로 평균적인 판매 구성을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지만,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주문은 결코 그 평균값에 수렴하지 않는다. 주문 구성의 다양성, 상품군(SKU)의 물리적 특성, 시시각각 변하는 포장 방식과 채널별 요구사항은 상시적인 작업 생산성의 편차와 현장 내 변수를 발생시킨다. 결과적으로 SOP는 존재하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예외 처리가 상수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표준화는 작업을 단순화하거나 효율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표준을 벗어나는 수많은 사례를 사후적으로 설명하거나 변명하기 위한 보조적인 참고 문서로 전락하게 된다. 닭가슴살 골라담기 주문이 쏟아지는 날, 현장의 베테랑들은 SOP 대신 자신만의 ‘감’과 노하우로 물량을 쳐내기 시작한다. 시스템이 제시하는 효율보다 인간의 임기응변이 더 빠른 상황에서, 표준화와 교육은 운영의 가이드가 아닌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고 만다.
표준화의 역설
이 지점에서 시스템이 아닌 숙련자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강화된다. 표준이 설명하지 못하는 돌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력의 직관과 판단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이는 다시 작업 결과의 불확실성과 편차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규모는 증가함에도 조직 차원의 학습 효과는 축적되지 않고 특정 개인의 역량에 귀속되는 것이다. 이 경우 규모의 확대는 효율의 개선이 아니라 관리 복잡도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커머스 특유의 급격한 수요 변동성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더욱 증가시킨다. 프로모션이나 이벤트, 플랫폼의 정책 변화에 따른 수요 변동은 이커머스 물류에서 더 이상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이를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또한 전무한 상황이다. 결국 변동성 관리가 실패하는 지점은 단순히 물량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시간대 주문 몰림 현상이나 마감 직전의 긴급 주문은 현장의 표준 프로세스를 순식간에 마비시킨다. 원래대로라면 표준화는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함에도, 변동성이 시스템이 흡수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면 표준은 오히려 운영의 유연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유지 비용으로 전환된다. 현장은 표준 준수보다는 당면한 상황 대응을 우선시하게 되고, 표준은 단지 책임의 소재를 가리거나 사후 보고를 위한 형식적인 기준으로 활용된다. 관리 인력이 계속해서 증원되고 조율을 위한 회의가 늘어나며, 재작업과 커뮤니케이션에 드는 무형의 비용이 고정비처럼 누적되는 현상은 규모의 경제가 멈췄다는 강력한 신호다. 나아가 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의사결정 구조와 실행 현장이 분리되는 문제도 심각해진다. 작업의 실행은 물류 현장에서 이뤄지지만, 물량의 유입 속도나 우선순위는 영업이나 마케팅, 혹은 외부 파트너사에 의해 결정된다. 200여 종 골라담기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 기획이 현장의 처리 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확정될 때, 그로 인한 비효율의 모든 책임은 현장 운영단으로 전가된다. 이처럼 이론과 현실의 괴리속에서의 표준화란 운영을 실질적으로 돕기보다 책임 귀속을 단순화하는 의도와 다른 역할로 전락하고 만다. 표준을 벗어난 판단은 현장 담당자의 리스크가 되고, 표준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효율은 구조의 문제로 돌아온다. 결과적으로 작업자들은 최적의 효율을 찾기보다 책임 회피를 위해 경직된 표준화에 의존하게 되고, 표준화는 판단력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어 조직의 전체적인 활력과 운영 효율을 망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는 더 이상 비용 효율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성과 잠재적 리스크를 흡수하고 은폐하는 수단으로 남을 뿐이다. 표준화 역시 효율을 극대화하는 날개가 아니라, 운영의 한계점을 정당화하는 방패막이 된다. 결국 이커머스 물류에서 규모의 경제가 실종되고 표준화가 무력해지는 현상은 작업의 변수, 통제 불가능한 변동성, 그리고 결정과 실행의 분리가 임계점을 넘어설 때 발생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보는 물류 현장의 혼란은 운영이 단순히 비효율적이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관리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은 잣대를 들이대며 규모와 표준만을 강조하는 데서 비롯된 부조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물류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나 어떻게 더 표준화를 할 수 있느냐가 아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 우리 센터는 어느 수준의 변동성까지 표준 프로세스로 감당할 수 있는가? - 200종 골라담기 같은 복잡 주문의 실질적 한계 비용은 얼마이며, 이를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가? - 표준화로 처리할 주문과 별도 처리가 필요한 주문을 어떤 기준으로 분리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질문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성과를 약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확장과 형식적인 시스템 구축이 초래할 운영의 붕괴를 막아내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방어선이 될 것이다. 이커머스 물류의 미래는 규모라는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비대해진 몸집을 지탱할 수 있는 유연하고 정교한 프로세스 구조로 재정립하는데 달려 있다.
본 사이트(LoTIS. www.lotis.or.kr)의 콘텐츠는 무단 복제, 전송, 배포 기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방법으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 제 136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 핵심단어 | 규모의 경제표준화이커머스 물류변동성세분화된 옵션 구성 |
| 자료출처 | |
| 첨부파일 |
| 집필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