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탈탄소화, 목표보다 어려운 것은 실행이다 [1]
작성자 : 박치병 한국해양대학교 기관시스템공학부 2026.08.31 게시규제의 방향은 분명해졌지만, 선사의 준비 수준과 투자 역량에 따라 전환 속도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국제 합의의 시간표는 흔들리고 있다
해운 규제는 설계효율과 운항효율을 관리하던 단계에서 연료의 전과정 배출량과 탄소비용을 직접 다루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EEXI와 CII가 이미 선대 운영에 반영되고, EU ETS와 FuelEU Maritime은 유럽 기항 선박의 비용과 연료 선택을 현실적으로 바꾸고 있다. 다만 국제적 단일규칙의 완성 과정은 직선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2025년 4월 승인된 IMO Net-Zero Framework는 같은 해 10월 채택 논의가 1년 연기됐고, 2026년 5월에는 그 논의를 12월에 재개하는 일정이 제시됐다. 이 지연을 규제 압력이 약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지역규제는 이미 작동하고 있고 선박의 수명은 길기 때문에, 지금의 발주와 개조 판단에는 2030년 이후의 비용구조까지 반영돼야 한다. 결국 선사는 하나의 확정된 규칙을 기다리기보다 여러 규제 시나리오에서도 유효한 선택지를 준비해야 한다.
그림1. 강화되는 규제와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 운항하는 선박
GCMD-BCG (2025) Advancing Maritime Decarbonization_Insights from the GCMD-BCG Global Maritime Decarbonization Survey (2nd edition)
넷제로 선언은 조직과 예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GCMD와 BCG에서 조사하고 작성한 보고서 'Advancing Maritime Decarbonization_Insights from the GCMD-BCG Global Maritime Decarbonization Survey (2nd edition)'에서 제공하고 있는 114개 선사와 운영사의 응답을 통해 탈탄소화는 더 이상 홍보 부서만의 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50년 넷제로를 높은 우선순위 이상으로 보는 비율은 77%였고, 넷제로 목표를 세운 기업은 60%로 늘었다. 특히 감축 로드맵을 갖춘 기업이 27%에서 54%로 두 배 증가하고, 전담 지속가능성 조직을 둔 비율도 63%까지 높아졌다. 목표, 로드맵, 전담조직이 동시에 확대됐다는 것은 탈탄소화가 경영관리 체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의미다. 기술·운영 효율화 수단에 허용하는 투자 한도와 수용 가능한 회수기간도 이전보다 커져, 기업 내부의 투자 태도 역시 달라지고 있다. 다만 로드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구매, 운항, 재무, 선대관리 부서가 같은 기준으로 투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선언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선박별 예산과 적용 시점까지 연결된 실행계획이다.
도입률의 상승보다 선대 전체의 전환 비율을 봐야 한다
친환경 수단을 한 번이라도 사용한 기업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바이오 혼합연료 채택률은 22%에서 46%로 상승했고, 메탄올도 3%에서 6%로 증가했으며 선체도장과 추진기 개선, 운항 최적화의 보급도 확대됐다. 그러나 “도입했다”는 답변과 “선대가 바뀌었다”는 현실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메탄올을 사용한 기업은 모두 자사 선대의 20% 미만에서만 운용했고, 바이오 혼합연료 채택 기업의 69%도 적용 범위가 선대의 5분의 1에 못 미쳤다. 풍력보조추진, 태양광, 공기윤활과 같은 초기 기술 역시 대부분 제한된 수의 선박에서 시험되는 단계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 해운의 평균 탄소집약도는 약 10% 개선됐지만 운송활동 증가로 절대 온실가스 배출량은 12% 늘었다. 실증사업의 개수보다 전체 선대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누적 배출량이 더 중요한 평가기준이 돼야 하는 이유다.
선사를 가르는 것은 기술 수준보다 ‘어디에서 막히는가’다
GCMD-BCG의 보고서 'Advancing Maritime Decarbonization_Insights from the GCMD-BCG Global Maritime Decarbonization Survey (2nd edition)'에서는 해운기업의 전환 과정을 세 층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프론트러너는 성숙한 수단을 선대에 확산한 뒤 새로운 연료와 기술까지 시험하며, 높은 투자비와 연료·항만 공급 부족 같은 실행 단계의 문제와 맞선다. 둘째, 팔로워는 검증된 수단은 도입하지만 신기술의 실제 절감효과와 회수기간을 확신하지 못해 평가 단계에서 속도가 늦어진다. 마지막으로, 보수형 기업은 정보와 전담인력이 부족하고 경제성 부담도 커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출발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해당 연구를 위한 조사에 모두 참여한 42개 기업 가운데 14곳이 더 진전된 유형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경험과 학습이 기업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모든 기업에 같은 보조금과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만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실행기업에는 공급망과 금융이, 평가기업에는 검증 데이터가, 출발기업에는 전문인력과 기본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예측 가능한 항로와 실행 역량이 전환 속도를 만든다
정기항로를 운항하는 라이너와 컨테이너선사, 대규모 선대를 보유한 기업에서 전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컨테이너선사의 62%, 100척을 초과하는 선대를 보유한 기업의 63%가 프론트러너에 해당했다. 정기항로는 기항지와 운항패턴을 예측하기 쉽고, 특정 항만의 연료·전력 인프라와 연계한 장기계획도 세우기 수월하다. 화주와 장기계약을 맺거나 친환경 운송비를 협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투자 판단을 돕는다. 그렇다고 규모가 곧 전환 능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선대에도 적극적인 기업이 있고, 대형 선사 가운데서도 평가와 실행이 늦은 사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한국 해운은 어떨까. 한국 해운에서는 중소선사가 기술평가, 공동구매, 금융조달, 성능검증을 개별적으로 해결하도록 두기보다 이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체계를 기반으로 전환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하고 대한민국의 중소선사도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한다. 추가적으로 실행 격차가 연료, 탄소포집, 효율화 기술과 항만 인프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이 내용은 다음 원고에서 지속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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