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한 캔에도‘이력서’가 필요한 시대
작성자 : 이종태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26.09.30 게시디지털 추적성이 바꾼 수산물 공급망과 물류경쟁력
태국 참치통조림의 90% 이상은 해외시장으로 나간다
태국은 세계 수산물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국 연근해에서 잡은 참치만을 가공해 수출하는 국가라기보다, 세계 여러 해역에서 생산된 참치 원어를 들여와 가공하고 다시 세계 소비시장으로 내보내는 대표적인 수산물 가공·수출 허브에 가깝다. 원료조달과 냉동보관, 가공, 포장, 수출물류가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태국의 참치산업은 글로벌 수산물 가치사슬의 중간 허브 역할을 한다. 2024년 태국의 참치통조림 생산량은 약 63만 톤이었고, 이 가운데 91.9%가 수출용이었다. 수출액은 약 25억 달러에 달했다. 같은 해 태국은 세계 참치통조림 수출량의 29.7%를 차지해 세계 최대 수출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미국, 일본, 호주뿐 아니라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양한 시장이 태국산 참치의 주요 수요처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경쟁력의 기준이 오랫동안 명확했다. 안정적으로 원어를 확보하고, 대규모 가공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단위당 생산비와 물류비를 낮추는 것이 중요했다. 냉동원어가 공장에 들어와 통조림으로 가공되고 컨테이너에 실려 해외 소비시장으로 나가기까지 얼마나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여기에 새로운 조건이 붙고 있다. 그 참치가 어디에서, 어떤 선박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잡혔는지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참치 한 캔의 경쟁력에는 제품 자체뿐 아니라 제품이 지나온 경로에 대한 정보까지 포함된다. 수산물 공급망에서 화물과 데이터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1. 태국 참치 가공산업의 생산현장
SeafoodSource, Processing & Equipment
그림2. 태국 참치통조림 생산 수출 현황 (91.9% 수출)
OIE
EU의 ‘옐로카드’는 어획 단계까지 시장진입 조건을 규제한다
수산물 무역에서 이러한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 사례 중 하나가 EU의 IUU, 즉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 규제다. EU는 2010년부터 IUU 규제를 시행하면서 EU 시장으로 들어오는 해양 수산물에 대해 합법적인 어획임을 확인하는 어획증명서(catch certificate)를 요구하고 있다. 관리체계가 미흡한 국가에는 이른바 ‘옐로카드’를 부여하고 개선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레드카드’를 통해 수산물의 EU 시장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 태국은 2015년 옐로카드를 받았고, 어업법과 선박관리·감시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뒤 2019년 EU로부터 경고 해제를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제도가 단순한 환경규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세는 상품이 국경에 도착했을 때 세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어획추적 규제는 상품이 국경에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작동한다. 어느 선박이 잡았는지, 해당 선박이 합법적으로 조업했는지, 어느 해역에서 언제 어획했는지, 물량이 가공과정에서 어떻게 이동했는지가 이어져야 한다. 즉 시장 접근 심사가 수입항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다의 어획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흐름은 2026년 더욱 명확해졌다. EU는 2026년 1월 10일부터 수입 수산물의 어획증명서를 디지털 방식으로 처리하는 CATCH 시스템을 EU 수입업자와 당국에 의무화했다. 종이문서를 디지털 정보교환체계로 바꾸고, 수입업자와 감독기관 사이에서 어획증명 정보를 보다 체계적으로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수산물의 시장진입권은 단순히 상품을 생산할 능력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수산물을 잡을 수 있는 능력과 함께, 합법적으로 어획을 했다는 증명 능력이 필요해졌다.
그림3. 태국 Pakbara Fisheries Port In?Port Out Control Center
Thailand Department of Fisheries.
태국의 수산항은 하역장에 그치지 않고 선박과 어획정보를 모니터링한다
이러한 규제 변화는 항만의 역할도 바꾸었다. 전통적으로 수산항은 어선이 입항하고, 어획물을 내리고, 냉장·냉동창고나 가공공장으로 보내는 물리적 물류거점이었다. 항만 경쟁력을 평가할 때도 접안능력, 하역속도, 저장시설과 배후 가공시설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태국의 IUU 대응체계에서는 항만이 선박과 화물에 대한 정보 확인 지점이 됐다. 태국은 수산업 개혁 과정에서 Port In?Port Out(PIPO) 관리체계를 강화했다. 관련 연구를 보면 어선은 조업 전후 항만에서 선박등록, 선원정보, 근로계약, 면허, 조업기록 등을 점검받고, VMS(Vessel Monitoring System)를 통해 선박 위치정보가 중앙 관리체계와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즉 현장 항만검사와 중앙 데이터가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항만물류의 범위를 넓힌다. 과거에는 입항 → 하역 → 보관 → 반출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입항 → 신원·선박 확인 → 어획정보 검증 → 하역 → 보관·가공 → 수출이라는 절차가 함께 작동한다. 화물처리 속도만 빠르다고 수산물 공급망의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선박정보나 누락된 어획기록이 발견되면 물리적으로는 정상적인 화물이라도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앞으로 수산항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화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가뿐 아니라 화물에 붙어 있는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즉 항만이 화물의 게이트인 동시에 데이터의 게이트가 되고 있는 것이다.
Thai Union은 참치의 출처를 선박 단계까지 추적한다
중요한 점은, 이런 식의 규제 강화는 기업의 경쟁방식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수산기업 Thai Union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Thai Union은 2026년 Wholechain과 협력해 참치와 새우를 시작으로 글로벌 사업장의 디지털 추적성 시스템을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동 회사는 어선과 양식장부터 가공, 유통, 소매까지 정보를 연결하고 서로 다른 시스템 사이에서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국제 데이터 표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Thai Union의 2025년 지속가능성 자료에 따르면 회사가 조달하는 참치는 모두 원산 선박 또는 선박군까지 추적할 수 있으며, 해상 모니터링 적용률은 95%에 이른다. 기존에도 추적성 체계를 운영해 왔지만, 최근에는 개별 시스템에 흩어진 정보를 연결해 실시간에 가까운 방식으로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만드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술투자의 목적이 단순한 공장 자동화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태국 참치산업의 경쟁우위가 저렴한 노동력과 대규모 가공능력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어느 어선이, 어느 해역에서, 어떤 어종을, 언제 잡았고, 어느 공장에서 처리했는가”를 빠르게 확인해 고객과 규제기관에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 유리해진다. 제품의 품질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제품의 이력을 관리하는 능력 자체가 서비스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Thai Union이 2017년부터 소비자가 제품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Can Tracker를 운영하고, 이를 글로벌 브랜드로 확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물류서비스와 정보서비스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결국 참치산업의 경쟁기준은 “얼마나 싸게 가공할 수 있는가”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가”로 확대되고 있다.
그림4. Thai Union의 참치 제품과 글로벌 가공사업
Thai Union Group.
문제는 디지털 추적성 강화는 소규모 어선과 노동자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추적성과 디지털화가 늘 긍정적인 결과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형 수산기업은 위성통신, VMS, 전자어획기록, 공급망 데이터 플랫폼에 투자할 수 있다. 전문 인력도 확보할 수 있고, 복잡한 수입국의 규제요건을 시스템 안에 반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규모 어선이나 영세사업자의 상황은 다르다. 태국의 수산업 개혁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추적성이 불법어업과 극단적인 노동착취를 억제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등록·서류·감시체계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의 부담이 일부 노동자에게 전가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이동과 고용관계가 문서체계와 결합하면서 추적성이 새로운 통제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즉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가 새로운 시장진입비용을 만들 수도 있다. Thai Union이 2026년 장거리 참치어선의 Wi-Fi 접근 확대를 발표한 점도 흥미롭다. 회사는 2026년 말까지 조달 대상 장거리 참치어선의 50%, 2028년에는 75%까지 Wi-Fi 접근을 확대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직접적인 목적은 선원의 복지와 의사소통 개선이지만, 동시에 먼 바다에서도 선박과 육상의 연결성이 점차 공급망 운영의 기본 인프라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모든 어선이 이러한 디지털 인프라를 같은 속도로 도입할 수 있는가이다. 추적성을 강화하되 영세어민과 소규모 사업자가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려면 저비용 장비, 표준화된 전자문서, 공동 플랫폼과 교육지원이 필요하다.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큼 규제를 이행할 수 있는 서비스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5. 태국 Satun 지역의 소규모 어업 현장
FAO / Sirachai Arunrugstichai, 2023.
수출시장은 하나가 아니다, 태국산 참치는 중동·아프리카에서도 시장을 넓히고 있다
규제와 관세환경이 복잡해질수록 기업은 한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태국 참치산업에서도 이러한 시장 다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첫 5개월 기준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이 태국 참치통조림 수출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0%로, 2020년 34.3%보다 확대됐다. 같은 기간 미국 비중은 2020년 24.7%에서 22.3%로 낮아졌다. Krungsri Research는 중동·아프리카의 식량안보 수요와 장기보관이 가능한 식품에 대한 선호, 할랄 시장의 성장 가능성 등을 태국 참치산업의 시장확대 요인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를 단순히 “EU 규제가 강해서 태국이 중동으로 도망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장 재편에는 관세, 환율, 구매력, 지정학적 불확실성, 식량안보, 소비문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2024년에는 미국과 호주의 태국산 참치 수입도 크게 늘었다. 즉 서구시장과 신흥시장은 단순한 대체관계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마다 요구하는 공급망 서비스의 조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EU와 미국의 프리미엄 유통시장에서는 추적성, 지속가능성, 노동·환경 기준, 식품안전 데이터가 중요해진다. 반면 중동·아프리카의 일부 시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가격과 장기보관성, 공급안정성과 할랄 인증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태국산 참치통조림이라도 모든 시장에 동일한 공급망을 적용하기보다 시장별 규제와 서비스 수준에 맞춰 물류경로와 제품전략을 달리하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글로벌 수산물 공급망은 하나의 규칙으로 완전히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별 규제수준과 소비조건에 따라 여러 경로로 분화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수산물류도 ‘화물의 이동’에서 ‘화물과 데이터의 동시 이동’으로 봐야 한다
태국 참치산업의 변화는 한국 수산물류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수산물 공급망에서 물리적 물류와 규제정보의 경계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선에서 생산된 어획정보가 항만과 가공공장을 거쳐 수입국까지 끊기지 않고 연결돼야 한다면, 앞으로 수산물류기업이 관리해야 할 대상은 냉동 컨테이너와 창고만이 아니다. 어획정보, 선박정보, 원산지, 가공이력, 온도기록, 위생·환경 인증정보가 화물과 함께 이동해야 한다. EU의 CATCH 의무화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EU 시장에서는 2026년부터 수입업자가 디지털 시스템을 통해 어획증명서를 제출하고, 당국과 관련 정보를 교환한다. 또한 EU는 향후 수산물의 디지털 추적성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리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항만에도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냉동·냉장 수산물류의 경쟁력이 신속한 하역, 저온보관, 검역과 통관에서 결정됐다면 앞으로는 수입되는 수산물이 가지고 온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고 검증할 수 있는지도 중요해질 수 있다. 특히 부산과 같은 수산물 수입·가공·재수출 거점에서는 단순히 물량을 많이 처리하는 것보다 화물과 정보의 단절을 최소화하는 디지털 서비스 능력이 새로운 경쟁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선박, 항만, 냉동창고, 가공업체, 통관기관 사이에서 데이터 형식이 제각각이라면 추적성을 요구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비용은 높아진다. 반대로 표준화된 데이터와 전자문서가 연결된다면 통관시간과 행정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시장의 신뢰도 높일 수 있다. 다만 디지털화를 경쟁력의 해답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영세어업인과 중소 수산기업이 높은 시스템 구축비용 때문에 시장에서 배제된다면 추적성의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공공부문은 공통 데이터 표준과 저비용 플랫폼을 마련하고, 항만과 물류기업은 이를 실제 화물흐름에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앞으로 수산물류의 경쟁력은 얼마나 빨리 운송하는가와 얼마나 싸게 운송하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선박에서 시작해 어느 항만을 거쳐 어떤 공장에서 가공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합법적이고 지속가능했음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지가 시장 접근의 조건이 되고 있다. 수산물 공급망에서는 이제 상품만 운송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함께 운송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림6. 수산물 물류 변화:화물에서 화물+데이터로.
저자구성
본 사이트(LoTIS. www.lotis.or.kr)의 콘텐츠는 무단 복제, 전송, 배포 기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방법으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 제 136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 핵심단어 | 통조림 물류수산물 수출EU IUU 규제태국산 수산참치통조림수산물 디지털참치 |
| 자료출처 | |
| 첨부파일 |
| 집필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