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에서 동남아로 이동한 충격, 팜오일이 보여준 공급망의 전환 (1편)
작성자 : 이종태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겸임교수 2026.09.30 게시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팜오일 공급망의 선택과 결과
전쟁은 흑해에서 시작됐지만 식용유 공급 충격은 동남아로 번졌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국제사회의 관심은 곡물가격과 에너지 공급에 집중됐다. 그러나 전쟁의 충격은 밀과 천연가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흑해를 통해 세계시장으로 공급되던 “해바라기유”의 물류가 흔들리면서 국제 식용유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당시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항만 봉쇄와 운송 차질이 발생하자 해바라기유 가격은 빠르게 상승했다. 관련 연구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세계 해바라기유 수출의 절반 이상, 러시아가 약 4분의 1을 담당하던 상황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했고, 수입국들이 팜오일과 같은 대체 식용유를 찾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바 있다. 식용유 시장은 다른 농산물보다 국제교역 의존도가 높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세계 식용유 소비의 약 40%가 무역을 통해 조달되며, 2019~2021년 국제적으로 거래된 식용유 가운데 팜오일이 약 58%를 차지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같은 기간 세계 팜오일 수출의 약 92%를 담당했다. 해바라기유 공급 차질이 곧바로 동남아시아 팜오일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여기에서 공급망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 하나 나온다. 공급망 충격은 한 지역에서 발생해 그 지역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해진 상품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상품, 다른 생산국, 다른 항만을 찾아 이동한다. 흑해의 항만에서 시작된 혼란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농장과 저장시설, 수출항에까지 전달된 이유다.
그림1. 흑해에서 동남아로 이동한 식용유 공급충격
저자구성
상품의 대체는 곧 물류경로의 대체다
경제학에서는 한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가 다른 상품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대체효과”로 설명한다. 해바라기유가 부족해지자 팜오일과 대두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그러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물류의 관점에서 보면 한 단계 더 복잡한 변화가 나타난다. 수입기업이 해바라기유 대신 팜오일을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히 구매 품목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공급국이 달라지고 출발항이 달라지며, 저장방식과 선적설비, 선박과 항로, 계약 상대방까지 다시 구성해야 한다. 흑해에서 선적되던 물량을 동남아시아에서 조달한다면 물동량의 출발점 자체가 이동한다. 기존 거래선의 공급차질은 새로운 생산자와 항만, 선박을 찾아야 하는 물류서비스의 재구성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2022년 말레이시아의 팜오일 수출시장에서도 이러한 대체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팜오일위원회(MPOB)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말레이시아산 팜오일 수입은 전년보다 17.2% 증가했는데, 같은 해 튀르키예의 러시아산 해바라기유 조달이 감소한 것이 그 배경 중 하나로 설명됐다. 상품의 대체가 실제 무역경로의 이동으로 이어진 사례다. 따라서 공급망 분석에서 ‘대체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체상품을 실제로 공급할 생산능력이 있는지, 수출항과 저장시설이 추가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지, 필요한 선복을 확보할 수 있는지까지 연결해서 봐야 한다. 상품의 대체 가능성과 물류의 대체 가능성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즉, 상품의 대체는 결국 물류경로의 대체다.
그림2. 말레이시아 Bintulu의 실제 팜오일 저장·벌킹 터미널
Bintulu Port Holdings Berhad, Biport Bulkers.
즉, 팜오일은 농산물인 동시에 해상물류 대체상품이다
팜오일을 농업의 관점에서만 보면 생산량과 가격이 먼저 보인다. 그러나 국제시장에 실제로 공급되기 위해서는 생산 이후의 물류체계가 그만큼 중요하다. 팜농장에서 수확된 신선과실송이(FFB)는 착유공정을 거쳐 원유인 CPO(Crude Palm Oil)가 되고, 정제와 저장을 거쳐 항만으로 이동한다. 수출항에서는 대형 저장탱크에 보관되다가 배관을 통해 선박에 선적되고 해외시장으로 운송된다. 따라서 국제 팜오일 공급망은 단순히 농장, 해외시장이 아니라 농장→착유·정제→저장→항만터미널→선박→수입국이 연결된 하나의 물류서비스 시스템이다. 말레이시아의 팜오일 물류 인프라는 이를 잘 보여준다. MPOB는 팜오일 벌킹시설(bulking installation)을 원유와 정제 팜유를 항만 인근 탱크에 저장한 뒤, 부두에 접안한 탱커로 직접 이송하기 위한 시설로 설명한다. 즉 팜오일 수출능력은 농장에서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가뿐 아니라 항만에서 얼마나 저장하고 신속하게 선적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2022년 말레이시아에서 실제 팜오일 수출이 이뤄진 항만도 분산돼 있었다. Port Klang을 통해 약 319만 톤, Pasir Gudang에서 약 289만 톤, Lahad Datu에서 약 174만 톤, Sandakan에서 약 141만 톤이 수출됐다. 하나의 생산지역이나 항만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수출거점을 통해 물량을 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팜오일의 국제경쟁력을 평가할 때 생산비와 농장 생산성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저장탱크, 항만 배관, 접안시설, 탱커 선복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물류 인프라 역시 공급능력의 일부다.
그림3. 말레이시아 팜오일 수출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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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대체유 팜오일 국제조달 관련 항만 및 유조선 하역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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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에서 막힌 물량은 공급망 안쪽으로 역전파하여 떠밀려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의 특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2022년 인도네시아의 팜오일 수출금지였다. 국제가격이 급등하면서 인도네시아 국내의 식용유 가격과 공급불안이 심화되자 정부는 DMO(Domestic Market Obligation)를 통해 생산량 일부를 국내에 우선 공급하도록 했다. 2022년 1월 20%였던 국내공급 의무비율은 3월 30%까지 확대됐다. 가격상한과 보조금 등의 조치에도 시장 불안이 이어지자 정부는 결국 4월 28일부터 팜오일 수출을 일시적으로 금지했고, 이 조치는 5월 23일 해제됐다. 소비자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무역정책이었지만, 물류망에서 보면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해외로 나가야 할 물량이 국내 공급망 안에 남기 시작한 것이다. 2022년 4월 인도네시아의 팜오일 재고는 610만 톤까지 증가했다. 저장시설의 여유가 줄어들면서 정제시설이 추가 물량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는 다시 농장에서 수확되는 FFB의 매입 축소 압력으로 이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FFB 가격이 약 60% 하락했다. 위 사실을 기반으로, 물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 과정은 명확하다. 수출 차단 → 해외출하 감소 → 국내재고 증가 → 저장능력 압박 → 가공시설 부담 → 원료 매입 감소 → 농가가격 하락 순이다. 즉, 항만에서 멈춘 물량의 충격이 공급망을 거꾸로 타고 산지까지 전달된 것이다. 무역규제는 통관선에서 끝나는 정책이 아니다. 국제물류의 출구를 막으면 상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내부에 체류한다. 그리고 재고를 받아낼 저장·가공능력이 부족해지는 순간 그 압력은 생산단계로 역전파된다. 글로벌 물류망을 막으면 물량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림5.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금지에 따른 내수시장 우선조달 현황
investing.com
그림6.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금지에 따른 내수시장 우선조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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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가 수출을 제한하자, 말레이시아의 공급망이 기회를 얻었다
한 국가의 수출제한은 국내 공급망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세계시장의 수입자는 필요한 물량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공급자를 찾는다. 인도네시아가 팜오일 수출을 제한했을 때 말레이시아는 수출을 중단하지 않았다. 관련 연구들에서도 인도네시아의 공급차질이 국제 식용유 시장을 더욱 긴장시키는 한편, 수출을 유지한 말레이시아의 경쟁적 위치를 강화하는 역설이 나타났다고 분석 보고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2022년 팜오일과 팜 기반 제품 약 2,472만 톤을 수출했고 수출액은 1,378억9천만 링깃으로 전년보다 27.1% 증가했다. 팜오일 자체의 수출량도 약 1,571만 톤이었다. 가격상승 효과가 컸지만, 중요한 것은 글로벌 시장이 불안한 시기에 수출물류 자체가 계속 작동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국제물류 경쟁력의 다른 모습, 즉 이면이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평상시에는 생산비가 낮고 생산량이 많은 공급자가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위기 때는 약속한 물량을 계속 선적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농장의 생산량뿐 아니라 저장시설, 수출항, 선박과 계약네트워크가 함께 유지돼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공급망 위기에서 시장점유율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생산능력만은 아니다.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보다, 공급을 계속할 수 있는 국가가 더 중요해 질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7. 인도네시아 수출제한의 수혜자, 말레시아(대체공급자로서의 위치)
MPOB 참고
공급망 회복력은 ‘재고’보다 전환 가능한 물류망에서 나온다
2022년 식용유 시장의 혼란은 하나의 전쟁이나 한 품목의 가격급등 사례로만 볼 수 없다. 흑해의 해바라기유 공급이 흔들리자 수요는 팜오일로 이동했고, 그 결과 세계 식용유 공급의 무게중심 일부가 동남아시아로 옮겨갔다. 다시 세계 최대 팜오일 공급국인 인도네시아가 수출을 제한하자, 국제시장은 공급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다른 공급처를 찾았다. 충격은 해바라기유에서 팜오일로, 흑해에서 동남아시아로,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다른 공급망으로 이동했다. 첨부 연구에서도 인도네시아의 수출제한이 세계 식용유 공급을 더욱 긴장시키는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경쟁적 위치를 강화하는 역설이 나타났음을 지적한다. 이 과정은 공급망 회복력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꿀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공급망 안정성은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고 장기계약을 맺으며 가장 효율적인 공급선을 유지하는 문제로 이해돼 왔다. 이러한 수단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하나의 공급망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는가 못지않게, 그 공급망이 작동하지 않을 때 다른 경로로 얼마나 빨리 이동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평상시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공급망이 위기 상황에서도 반드시 강한 공급망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환능력은 단순히 ‘대체 공급국을 알고 있다’는 의미보다 넓다. 다른 나라에서 같은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추가 물량을 처리할 저장시설과 수출항이 부족할 수 있고, 항만에 물량이 있어도 선박을 확보하지 못하면 실제 공급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새로운 공급자와의 계약, 품질규격, 금융·보험, 항만서비스와 운송계약까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결국 공급망의 대체 가능성은 생산능력과 물류능력이 결합된 결과다. 인도네시아의 사례는 그 반대 상황도 보여준다. 수출이라는 출구가 갑자기 막히자 물량은 사라지지 않고 국내 공급망에 남았고, 재고가 증가하면서 저장·가공단계의 부담이 커졌으며 그 압력이 다시 농가로 전달됐다. 2022년 4월 팜오일 재고가 610만 톤까지 증가하고 일부 지역의 FFB 가격이 크게 하락한 것은 무역정책의 충격이 항만에서 멈추지 않고 공급망을 역방향으로 전파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말레이시아는 수출 흐름을 유지함으로써 세계시장에 남아 있는 대체수요를 흡수할 수 있었다. 위기에서 물류의 연속성 자체가 새로운 경쟁우위가 된 것이다. 이 점에서 국제물류 경쟁력의 의미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생산비와 운송비를 얼마나 낮추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공급망이 흔들릴 때는 비용 몇 퍼센트를 줄이는 것보다 약속한 물량을 계속 선적할 수 있는가, 다른 항만과 선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갑자기 늘어난 물량을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공급망 위기에서 ‘가장 싼 공급자’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2022년 팜오일 시장은 바로 이 차이를 보여줬다.
결론
기업의 공급망 관리 역시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여러 국가와 계약을 맺어 놓았다는 사실만으로 위험이 분산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 공급국들이 동일한 항로와 해협, 특정 환적항에 의존한다면 실제 물류위험은 여전히 집중돼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공급망을 국가별 공급비중으로만 관리하기보다 생산지?저장시설?수출항?항로?선박?수입항으로 이어지는 경로 단위로 파악해야 한다. 어느 한 지점이 막혔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두 번째와 세 번째 경로가 실제로 준비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정책 측면에서도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수출규제나 항만폐쇄, 전쟁과 같은 충격을 단순한 통상리스크와 물류리스크로 따로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 국가의 무역정책 변경이 다른 국가의 항만 물동량과 선복 수요를 변화시키고, 저장시설의 부족이 다시 생산자의 가격과 생산계획을 바꾼다. 통상정책과 물류망은 이미 하나의 공급망 안에서 연결되어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주요 원자재에 대한 위험관리 역시 국제가격이나 국가별 수입의존도뿐 아니라 항만 처리능력, 재고와 저장능력, 선복 확보 가능성, 대체항로까지 함께 모니터링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결국 2022년 팜오일 시장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식용유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공급망은 충격이 발생할 때 멈춰 서 있기보다 새로운 상품과 공급자, 항만과 항로를 찾아 스스로 경로를 바꾼다. 그 과정에서 기존 공급자의 빈자리는 다른 공급자에게 시장기회가 되고, 반대로 물류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 공급자는 생산능력을 가지고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공급망 회복력은 모든 충격을 막아내는 능력이 아니다. 충격이 발생해도 흐름을 완전히 잃지 않고, 필요할 때 다른 상품·공급국·항만·선박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앞으로의 물류 경쟁력은 가장 효율적인 하나의 경로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 경로가 막혔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다음 경로’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준비해 놓았는가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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