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탈탄소화의 ‘빈틈’을 메우는 인세팅, 전환의 다리가 될 수 있을까
작성자 : 박치병 한국해양대학교 기관시스템공학부 2026.10.31 게시화주의 Scope 3 감축 수요와 선사의 연료전환 비용을 연결할 수 있지만, 경계·추가성·검증이 무너지면 인세팅은 오프셋의 다른 이름이 된다
오프셋을 넘어, 해운의 전환비용을 가치사슬 안에서 나누다
국제해운의 탈탄소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를 기술 부족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녹색 메탄올과 암모니아, 수소 기반 연료는 아직 가격이 높고, 이를 사용하는 선박과 연료 생산설비, 저장·벙커링 체계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전환비용을 누가 먼저 부담하느냐이다. 선사는 연료 프리미엄과 선박 투자를 떠안지만, 화주 역시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Scope 3 배출을 줄여야 한다. 두 주체가 각자의 비용과 장부만 바라보면 친환경 연료에 대한 수요는 흩어지고, 연료 생산자는 장기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인세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단절을 해운 가치사슬 안에서 연결하려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림 조성이나 다른 산업의 감축실적을 구매하는 일반적인 오프셋과 달리, 인세팅은 연료 생산자·항만·선사·물류기업·화주로 이어지는 같은 공급망 안에 감축 재원을 남긴다. 화주가 지불한 프리미엄이 실제 저탄소 연료 구매와 운항으로 이어진다면, 그 돈은 해운부문의 다음 감축을 가능하게 하는 수요가 된다. 따라서 인세팅의 본질은 배출량을 장부에서 지우는 거래가 아니라, 아직 한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전환비용을 가치사슬 구성원이 나누는 계약에 가깝다. 이 원칙이 지켜질 때 인세팅은 규제가 충분히 작동하기 전의 투자 공백을 메우는 유용한 다리가 될 수 있다.
그림1. 해운 가치사슬 안에서 감축 재원과 전환비용이 순환하는 인세팅 구조
저자 구성
북앤클레임은 연료의 위치보다 수요를 먼저 연결한다
인세팅을 실제 거래로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북앤클레임(book and claim)이다. 예를 들어 한 선박이 인증된 저탄소 연료를 사용하면, 그 운항에서 발생한 감축 속성을 인증서로 발행해 등록부에 기록할 수 있다. 친환경 연료를 직접 공급받기 어려운 다른 항로의 화주가 그 인증서를 구매하면, 해당 감축 속성을 자신의 운송 관련 배출 저감 성과에 반영하는 구조다. 물리적 연료와 환경 속성을 분리하기 때문에 친환경 연료가 공급되는 항만과 감축 비용을 지불하려는 화주의 항로가 정확히 일치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대신 인증서를 판매한 선사나 연료 사용자는 같은 감축분을 다시 주장할 수 없어야 하고, 발행·이전·폐기 과정도 하나의 등록체계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추적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식은 특정 연료와 화물을 물리적으로 분리해 연결하는 것이지만, 글로벌 해운에서는 비용과 운영 제약이 크다. 북앤클레임은 그 제약을 낮춘 대신 회계와 검증에 훨씬 더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미 선사와 물류기업들은 저탄소 운송 상품을 판매하고 있고, 공동 플랫폼은 여러 화주의 수요를 묶어 연료 공급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2026년 공개된 SBTi Corporate Net-Zero Standard V2.0도 직접 감축을 우선하는 원칙 아래, 가드레일을 전제로 질량수지와 북앤클레임 기반의 상품 인증서를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열었다. 이는 북앤클레임이 단순한 마케팅 상품을 넘어 공급망 감축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인증서 거래량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연료공장이 건설되는 것은 아니다. 초기 수요를 장기 구매계약과 실제 연료 생산 투자로 연결할 때 비로소 북앤클레임은 시장을 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세팅의 신뢰를 위한 네 가지 질문
인세팅은 찬성과 반대의 문제보다는, 좋은 인세팅과 나쁜 인세팅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은 감축이 어디에서 발생했느냐이다. 해운 인세팅이라면 적어도 연료 공급망, 항만, 선박 운항, 화물운송처럼 해운 가치사슬 안에서 만들어진 감축이어야 하며, 전혀 다른 운송수단이나 산업의 실적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추가성이다. 법규를 지키기 위해 어차피 사용해야 하는 연료나 이미 계획된 투자를 다시 자발적 감축으로 판매한다면 실제 배출량은 더 줄지 않는다. 세 번째는 단 한 번의 주장이다. 연료 생산자, 선사, 화주가 동일한 감축분을 각자 실적으로 계산하지 않도록 인증서의 발행·보유·이전·폐기를 독립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은 규제와의 정합성이다. 현재 IMO의 기존 효율규제와 전과정평가 체계는 선박에 실제 사용된 연료를 중심으로 배출량을 계산하는 반면, EU 제도는 일정 범위에서 질량수지 방식을 인정한다. 2025년 4월 원칙 합의된 IMO Net-Zero Framework도 최종 채택이 미뤄졌으며, 2026년 10월 현재 관련 협상은 12월 재개를 앞두고 있다. IMO가 체인 오브 커스터디(Chain of Custody, CoC, 증거물 연계성 또는 관리 연속성)를 별도의 전문가 의제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북앤클레임의 규제상 지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발적 인증서를 곧바로 규제 준수 단위와 동일한 것으로 판매해서는 안 된다. 감축 경계, 기준선, 전과정 배출계수, 중복계상 방지와 제3자 검증이 함께 갖춰져야 인세팅은 오프셋의 다른 이름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림2. 경계, 추가성, 단일 주장, 제3자 검증이 인세팅의 신뢰를 결정한다
저자 구성
단기 감축을 장기 연료전환으로 이어야 한다
현재 해운 인세팅 시장에서 가장 쉽게 거래되는 감축 속성은 바이오연료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기존 선박에 비교적 쉽게 적용할 수 있고, 녹색 수소 기반 연료보다 당장의 감축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전환 초기에는 합리적이지만, 가장 저렴한 인증서만 반복해서 구매하면 바이오연료 중심의 경로가 굳어지고 녹색 메탄올·암모니아·수소 같은 확장 가능한 연료에 대한 투자는 늦어질 수 있다. 인세팅이 전환의 다리가 되려면 단기 감축으로 확보한 수요와 자금을 다음 단계의 연료로 넘겨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ZEMBA의 공동조달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첫 조달에서 폐기물 기반 바이오메탄을 활용한 뒤, 2025년 12월 발표된 두 번째 조달에서는 Hapag-Lloyd의 e-메탄올과 North Sea Container Line의 e-암모니아 운송을 선택했다. 2027년부터 시작되는 이 계약은 초기 200억 톤·해리의 운송활동에서 최소 약 12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이고, 두 연료 모두 기존 연료 대비 전과정 탄소집약도를 90% 이상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로 이런 식으로 바이오연료에서 끝나지 않고 상용 규모의 e-연료 수요를 만드는 것이 인세팅의 장기적 역할이다. 형평성도 같은 수준으로 중요하다. 아무런 조건이 없으면 자금은 인프라와 금융 여건이 좋은 대형 허브와 기업에 집중되고, 소규모 선사와 개발도상국·도서국은 더 높은 감축비용을 감당한 채 뒤처질 수 있다. 프로젝트 위치와 수혜자를 공개하고, 일부 수요와 재원을 전환 여건이 취약한 지역에 배분하는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결국 인세팅의 성과는 발행된 인증서의 수가 아니라 새 연료가 얼마나 생산됐는지, 실제 운항 선박과 벙커링 거점이 얼마나 늘었는지, 그리고 친환경 프리미엄이 얼마나 낮아졌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그 물리적 변화가 뒤따를 때 인세팅은 면죄부가 아니라 해운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는 실질적인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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